죽음연습32

남자 1호는 여자 1호를 잊지 못한다. 여자 1호는 남자 2호를 잊지 못한다. 남자 2호는 여자 2호를 잊지 못한다. 여자 2호는 남자 1호를 잊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의 등을 보는 이런 관계. 이게 잔인한 이별의 현실이다. 
따라서, 남자는 어떤 여자를 잊지 못하는지, 여자는 어떤 남자를 잊지 못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그 사람은 날 기억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몇몇의 이성 중에 “가장” 잊혀지지 않는 그 사람은 그 사람이 만난 몇몇의 이성 중에 나를 “가장” 쉽게 잊는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그렇다고 믿는 것이 여러모로 내게 좋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재회를 하고자 하면 열심히 잊을 것. 
삶에서 이런 모순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상대도 원하기 때문. 내가 잘 살고 싶으면 상대도 잘 살고 싶고, 내가 행복하고 싶으면 상대도 행복하고 싶기 때문. 그런데, 남녀는 추구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서로 반대.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 것이 서로 톱니바퀴처럼 반대로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둘 중 한 명이 행복하면 다른 한 명은 불행을 느낌. 비교 대상이 둘 뿐이므로, 흑백논리를 적용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만약 이 세상에 제 3의 성 이상의 것이 있다면, 그제서야 케바케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공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이별을 하고, 저마다 다른 경험을 했을 테니까. 이런 게시판도 없었겠지. 
분명히 다른 경험을 했음에도, 이별하면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두 가지의 성밖에 없어서다. 그 두 가지 성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네 가지 뿐이다. 내가 좋아하던 이성을 차거나, 그 이성으로부터 차이거나, 나를 좋아하는 이성을 차거나, 그 이성으로부터 차이거나.